.국제유태자본론 백문백답 90-5 : 남북전쟁, 링컨, 호레이스 그릴리, 맑스, 로스차일드, 모건, 샐리
국제유태자본론 백문백답 90-5 : 남북전쟁, 링컨, 호레이스 그릴리, 맑스, 로스차일드, 모건, 샐리그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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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이 당시 국유본 영국 체제의 직영 식민지라는 것을 지난 글에서 언급을 이미 했으니 미영 전쟁과 독립 전쟁 다음으로 미국 근대사를 가른 전쟁으로,남북전쟁과 링컨 등에 대해 언급할 차례인 듯하다.
남북전쟁 이전 당시 미국의 상황은 남부분리주의자들과 링컨을 비롯한 북부로 나뉘어져있었으며,
1861년에는 미국 남부는 따로 남부연합이라는 연합체를 조직하고, 더 이상 아프리카에서 흑인들을 수입하는 것을 하지 않겠다는 조항을 넣은 흑인 노예를 일종의 개인 사유 재산으로 지정하는 법안을 상정했다.
이때, 당대 대통령이었던 에이브러햄 링컨은 남부의 분리주의 성향을 크게 반대하여,
"(합중국 내의) 분리는 반란이다." 라고 하여 이에 남부가 선제공격을 하게 되면서 남북전쟁이 시작되었다.
보통 역사 교과서를 보면 남북전쟁의 원인이 링컨의 노예해방 선언에 반발심을 느낀 남부가
선빵쳐서 일어났다고 했으나, 더 깊이 들어가면 직접적인 원인이 아니었고 이를 계기로 링컨에 대한 흑색
선전용 음모론으로 그가 진정으로 흑인 노예 해방을 지지하지 않았다는 선동을 하게 된다.
이에 대한 팩트로는, 링컨의 성향과 정치적 가치관을 보면 바로 확인이 가능한데
그는 남부 지역 연합의 분리주의적 성향을 매우 경계한 강력한 힘을 바탕으로 한 "통합주의자" 에
가까웠으며 노예해방은 분리주의적인 남부를 견제하기 위해 내놓은 조커라고 볼 수 있다.
남북전쟁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조지 워싱턴과 알렉산더 해밀턴, 제퍼슨 등이 활동했던
초기 미국의 역사를 다시 되짚어봐야한다.
우선, 미국은 영국에 대항하여 13개주가 연합하여 독립하였으며,
그 중에서도 버지니아 주는 당대 미국의 부유층들이 많은 곳으로 알려져있었다.
버지니아주는 국유본의 프리메이슨 계열의 기업들을 통해 크게 투자한 곳으로 알려져있으며,
당시 새로운 세계 전략과 비용 절감을 위해 시도한 미국 독립을 결정하게 되는데 이때 초기 미국의
영웅이라 불렀던 워싱턴, 제퍼슨, 해밀턴 등과 같은 걸출한 인물들이 많이 나온 곳으로 현재도 역대
미국 대통령을 많이 배출한 곳으로 알려져있다.
그 당시 제퍼슨을 위시해 중앙집권 구조 모순을 예시로 반발하여 지방분권 강화를 주장하며
현재 미국 연방제의 기초를 닦게 되는데, 이러한 연방제의 이유는 버지니아주가 다른 곳보다도 더 부유하고
더 잘 먹고, 잘 사니 특별대우해달라는 단순한 이유였다. 이를 거절하면 분리독립하겠다라는 말과 같이.
당시 미국 남부의 주는 이탈리아 북부와 중국의 동부와 비슷한 입지를 가진 주로,
미국은 이러한 분리주의적 경향이 강한 남부를 품고 가느냐,아니면 이 문제를 터트리고 가느냐라는 문제를 안고 건국 전후부터 국가로써 첫 걸음을 뗀 것이었다.
당시 독립 직후의 미국은 13개의 주로,이 주들은 미국 동부에 위치했다.

미국 동부는 버지니아, 뉴욕, 매릴랜드, 펜실베이니아, 델라웨어 등으로 이뤄져있는데,
뉴잉글랜드라고 부를 수 있는 메인, 버몬트, 뉴햄프셔 등의 지역은 잉글랜드 청교도인들이 주로 많이 사는 곳으로, 네덜란드계 지역이라 할 수 있는 뉴욕, 뉴저지와 같은 곳은 유대계 가문이 많이 사며 버지니아 주 남부의 경우에는 성공회 영국인들이 많이 거주하던 곳이다.
반면에 펜실베이니아는 중립지역으로, 그 중에서 필라델피아는 미국 초기의 수도로 유명했으며
제퍼슨과 같은 버지니아 출신의 정치인들은 필라델피아가 버지니아주보다도 멀어서버지니아 근처로
천도해달라는 천도론을 앞세우자 워싱턴 정부는 통합을 위해 버지니아 주와매릴랜드 주 사이에 있는
워싱턴 DC를 건설해 수도로 지정했다.
뉴욕을 포함한 네덜란드 유대계 지역은 미국 정치사를 좌우하는 지역으로,
오늘날까지 미국 경제-금융의 중심지로 자리잡았다. 월스트리트를 생각하면 이해하기 편하겠다.
1800년대 중후반, 영국 중심 체제 중심의 국유본은 팍스 브리타니카 체제로는 더 이상 단독으로 독식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했는지 일본, 독일, 미국 등과 같은 신생 자본주의 국가들을 꼬드겨제국주의 활동들을 장려했으며 이를 장려하기 위해 신설되는 것이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중앙은행이라 할 수 있다.
당시 중앙은행은 단지 제국주의의 보증을 위한 보험과도 같은 곳으로, 돈을 대량으로 찍어 유통하는
발권력과 정치적으로 독립해 상업거래를 보증하는 역할을 담당하는 곳이었다.
해서, 남북전쟁 직전에 미국이 후기 제국주의의 대표주자로 거듭나기 위해선
산업화를 진행해야했고, 기존의 면직물들과 농산물들을 유럽으로 수출하는 거대 농업국가가 아닌,
금과 같은 광물을 채굴하고 철강을 생산-유통할 수 있는 광산과 운하, 철도를 중심으로 구축하여
새로운 거대 공업국가로 변모하여 기존의 미국 경제 구조를 파괴하고 다시 창조해야했다.
그러니 노예 노동을 동원한 면직물, 아편 플랜테이션으로 돈벌어 먹고 살던 대지주들 중심의
남부는 더더욱 불만과 불안감이 증폭하여 링컨의 노예해방을 명분으로 분리독립을 대대적으로주장한 것.
그렇다면 국유본(국제자본)이 신생 후발 자본주의 국가들을 거대 제국으로 성장시키기 위해서
어떠한 기획을 설계했으며 또 얼마나 실험을 거쳤을까??
국유본의 이러한 실험은 나폴레옹과 그 이후 오를레앙 공의 아들 루이 필립 1세가 몰락하게 된
계기인 2월 혁명, 나폴레옹의 조카인 루이 나폴레옹(나폴레옹 3세)를 타도하기 위해 결성된
파리 코뮌, 로스차일드의 대아시아 진출과 그의 동맹 가문인 사순의 아편 중국 시장 개척의 기회가
되었던 아편전쟁과 세포이 항쟁으로 이는 아편전쟁이라는 국제 유통 강화책을 통해 로스차일드가는
베어링 체제의 국유본에서 완벽하게 떠오르는 실세가 되었다.
국유본이 전세계적으로 국제 유통 강화책 중 하나인 아편전쟁과 유럽의 시민혁명과 쿠데타를 일으키고,
미국, 일본, 독일과 같은 신생 자본주의 국가들을 성장시키도록 지원해주는 동안,
미국 내부에서는 반프리메이슨 운동을 주도하는 두 사람이 주로 언급되고 등장하였다.
한 사람은 우리가 잘 아는 사회주의자이자 공산당 선언을 외쳤던 칼 마르크스이고,
또 다른 한 사람은 링컨과 친분이 있던 정계 자금 후원자인 호레이스 그릴리였다.
https://ko.wikipedia.org/wiki/%ED%98%B8%EB%9F%AC%EC%8A%A4_%EA%B7%B8%EB%A6%B4%EB%A6%AC
호러스 그릴리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호러스 그릴리(Horace Greeley, 1811년 2월 3일 ~ 1872년 11월 29일)은 미국 저명한 신문사의 편집자이고 진보적인 공화당의 창설자, 사회개혁가, 정치인이었다. 그가 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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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ko.wikipedia.org/wiki/%EC%B9%B4%EB%A5%BC_%EB%A7%88%EB%A5%B4%ED%81%AC%EC%8A%A4
카를 마르크스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카를 마르크스(독일어: Karl Marx ˈkaɐ̯l ˈmaɐ̯ks[*][2][3], 문화어: 칼 맑스[4], 1818년 5월 5일 ~ 1883년 3월 14일)는 독일의 철학자, 경제학자, 역사학자, 사회학자, 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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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의 관계는 상사와 직원의 관계로 그릴리는 반프리메이슨 운동을 위해 창설한 뉴욕 데일리의 발행인으로,
마르크스는 뉴욕 데일리 유럽 통신원으로, 마르크스는 전에도 언급되었겠지만 영국에서 언론인 생활을 한 경력이 있으며 그의 신문사인 신라인신문에 비하면 규모는 훨씬 큰 신문사로 주로 유대인 혈통의 가문들이 많이 거주하는 뉴욕과 청교도 영국계 미국인들이 많이 거주하는 뉴잉글랜드 지역에서 많이 구독했다고 함.
그릴리, 그는 반프리메이슨 운동을 위해 반메이슨 정당이었던 공화당과 미국 휘그당을 후원했으며
공화당의 에이브러햄 링컨, 미 휘그당의 윌리엄 H. 해리슨을 지지했던 것으로 알려져있다.
허나, 링컨이 대통령에 당선되고 남북전쟁에서 게티즈버그 전투를 끝으로 북군이 승리했으나
그가 밀어준 링컨은 남부에게 큰 요구를 하지 않게 되고 그로 인해 노예해방이 지지부진하게 되자,
링컨을 씹게 되었다.
그 이후 호레이스는 그를 정면으로 씹게 되면서 그에게 남부에 대한 강한 처벌을 요구했으며,
임기 전후로 그가 암살되자 급진보수의 상징으로 자유공화당의 후보 신분으로 대통령 선거 출마에 나섰지만실패하게 된다.
링컨 암살의 원인으로 몇몇은 그린백 채권, 중앙은행 음모론 등등이 (국유본에 의해) 퍼졌는데,
우선 그린백 채권은 링컨과 북군의 후원자이자 재정 담당인 샐리그먼과 로스차일드의 미국 대리인
모건이 소유하고 있던 채권으로 근본적인 원인이 아니었다.
그렇다면, 무엇 때문인가?
당시 로스차일드는 미국을 2개로 분리되어 현재 인도와 파키스탄, 중국과 대만, 한국과 북한,
아제르바이잔과 아르메니아, 세르비아와 코소보, 크로아티아처럼 분쟁 지역으로 만들고자 했던 것이다.
마치 오늘날 미군의 베트남, 이라크, 아프간, 러시아군의 우크라이나 전선처럼!!
해서, 뉴욕데일리 유럽 담당이었던 마르크스의 논조가 점점 국유본의 실세인 로스차일드에
비판적이니 뉴욕데일리의 오너인 그릴리는 그를 해고하였고, 그와 마르크스 사이의 중간에 끼여 있는
편집장이었던 찰스 데이나는 끝까지 링컨을 지지했다.
우리 인류가 접하는 음모론에서는 인디언 살육자 잭슨과 노예 해방 대통령 링컨을 연준에 반대해
제거당했다는 터무니 없는 내용이지만 기타 음모론이 그렇듯이 대부분 정치적 측면이 강한 흑색 선전에 가깝다.
링컨도, 제퍼슨도, 잭슨도 다 국유본 인맥이고, 그들은 이들을 지지하고 후원해주는
후원회장 중에서도 제일 오너들이니까.
그렇게 남북전쟁은 링컨과 율리시스 그랜트가 이끄는 북군이 게티즈버그에서 크게 승리를 거둔 다음,
북부의 총 오너인 링컨은 죽게 되며 그랜트는 링컨 이후 대통령 직무를 수행한 앤드류 존슨 이후로
미국 대통령으로 임명된다.
남북전쟁이 생각보다 일찍 끝나고, 그들의 대리인 중 하나였던 피바디가 나가리되자
이를 타계하기 위해 로스차일드의 충직한 푸들인 모건은 미국 무대에선 자중해야 했다.
다만, 모건은 미국 건너 유럽에서는 보불전쟁과 비스마르크의 급부상으로 떼돈을 벌게 되어
베어링, 로스차일드 다음으로 세계에서 잘 나가는 재벌가문으로 떡상하게 된다.
모건은 로스차일드의 푸들로서 충직한 가신의 역할을 본격적으로 활동하게 되는데,
아까 이야기했던 보불전쟁부터 제1차 세계대전, 러일전쟁, 니커보커 위기 공황 등까지
19세기 후반부터 20세기 초반에 일어난 굵직한 사건들은 모건과 관련되어 있다.
모건은 로스차일드의 푸들이고, 당시 로스차일드의 가주는 리오넬 로스차일드와
나다니엘 로스차일드 시기였으며 당대 국유본 권력 1위인 베어링 체제는 실세인 로스차일드의
급부상을 견제하기 위해 반유대주의 정서를 유도했다.
가장 좋은 사례가 시온의정서로, 시온의정서를 유포한 자는 미국 자동차 거물인 헨리 포드다.
참고로 헨리 포드는 반유대주의 프리메이슨으로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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